변리사에게 특허전략을 상담한 중소기업이 소송이나 조사 과정에서 그 자료를 지켜낼 법적 권리는 아직 없다. 2027년 2월 20일 시행되는 개정 변호사법이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을 신설했지만, 변리사 자문에는 상응하는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노비즈협회와 한국지식재산협회는 김종민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과 함께 9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중소·벤처기업의 첨단기술, 어떻게 지킬 것인가?’ 국회 간담회를 열었다. 국회의원과 이노비즈협회·한국지식재산협회·대한변리사회 회원사, 지식재산 전문가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비밀유지의무와 비밀유지권, 다른 두 개념
변리사의 비밀유지의무와 의뢰인의 비밀유지권은 별개다. 전자는 변리사가 자문 내용을 누설하지 않을 의무를, 후자는 의뢰인이 소송이나 조사 과정에서 관련 자료의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개정 변호사법은 후자를 변호사-의뢰인 관계에 새로 규정했지만, 변리사와 기업 사이의 특허전략·기술자문 자료에는 이런 권리가 없어 실제 분쟁 상황에서 보호받지 못할 우려가 제기됐다.
이런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변리사 의뢰인비밀보호제도(ACP) 신설을 담은 변리사법 개정안이 2026년 1월 김종민 의원 등 10인의 발의로 국회에 올라왔고, 2026년 3월 통합 대안이 국회 산자위를 통과했다. 다만 최종 입법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김창식 한국지식재산협회 수석부회장 겸 삼성전자 부사장은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 중인 변리사 비밀유지권은 기업과 변리사 간 한층 적극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해 더욱 강력한 특허를 창출하는 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와 토론, 기술 방어권을 사업 언어로
간담회는 정광천 이노비즈협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여우석 LG에너지솔루션 책임, 김세종 성남시혁신지원센터장, 윤수원 미코세라믹스 이사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발표자들은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증거 확보 강화와 기업의 핵심기술·특허전략 보호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기했다. 새 증거개시 절차가 도입되면 기업이 보유한 특허전략과 기술자문 자료가 소송 과정에서 노출될 여지가 커지는데,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변호사에게만 있고 변리사 자문에는 없다는 것이다.
정광천 이노비즈협회장은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등 기술보호 체계가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제도적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중소기업이 안심하고 혁신에 매진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6년 8월 말 기준 전국 이노비즈기업은 약 2만3535개사로, 이들 중소·벤처기업이 보유한 특허전략과 기술자문 자료가 이번 논의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대상이다.
입법 검토 기준은 기업의 방어권
산업계는 변호사·변리사 간 직역 논의를 넘어, 기업이 실질적으로 자기 기술을 방어할 권리를 확보하는 것을 입법 검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특허전략과 기술자문 자료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면, 중소기업으로서는 변리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 자체가 기술 노출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근저에 있다.
김종민 의원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국내 기업의 핵심 지식재산을 빈틈없이 보호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라며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 기업의 기술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적·입법적 뒷받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변리사법 개정안이 국회 산자위를 통과한 뒤로도 최종 입법 완료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어서, 이번 간담회에서 나온 산업계의 요구가 향후 입법 논의에 어떻게 반영될지가 관심사로 남아 있다.